미래의 사회 혁명을 위한 가치들
인간에게 평화를, 제도에는 전쟁을!
한명의 CNT 회원이
이전 호의 [오르토(Orto)] 잡지에는 “인간 해방 투쟁에 있어서의 집단 행동의 포기”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습니다. 우리는 그 글에서 사회 역사 속 개인적, 집단적 사고와 문화의 역동성과 발전 과정을 연구했습니다.
그리고 개인주의와 집단적 해방 제안이 각 시기마다 어떤 가치와 의미를 지니게 되었는지 정의했습니다.
역사는 우리에게 거대한 패러다임의 변화를 연구할 기회를 제공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그 어떤 경우에도 사회가 세계에 대한 통합적 의식에 주의를 기울인 적은 없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역사 속 인간의 의식은 철저히 집단적인 경험이나 철저히 개인적인 의식에만 치중해 왔습니다. 하지만 자유지상주의 운동은 사회, 즉 사회 제도를 변화시키는 것과 동시에 개인을 변화시키는 것이 필요하다는 점을 매우 잘 알고 있었습니다.
새로운 인간으로부터 새로운 세계를 건설해야 한다는 것을 말입니다.
아나키즘은 사회의 중요한 부분의 발전을 저해하는 자본주의 사회와 국가를 비판함과 동시에, 단순히 사회의 악으로 간주되는 모든 제도를 폐지하는 것만을 추구하지 않았습니다.
아나키즘, 특히 아나코-생디칼리즘은 아나키스트 노동자 문화가 새로운 인간을 형성할 수 있음을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교육과 문화, 그리고 자본주의 세계에 대한 저항을 통해 자신들을 착취하고 억압하는 세계와 양립할 수 없는 모든 가치를 내면화했습니다.
즉, 새로운 인간의 노력, 헌신, 책임감, 희생정신, 그리고 투쟁과 역량 함양으로부터 탄생하는 새로운 세계를 의미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아나키즘은 인간의 토대가 아닌 제도의 변혁에서부터 사회를 변화시키려 하는 권위주의적 사회주의와 차별화됩니다.
즉, 정치 혁명을 통해 권력을 쟁취한 뒤에 새로운 인간을 만들어내겠다는 발상과는 다른 것입니다.
스페인의 자유지상주의 운동과 아나코-생디칼리즘은 역사에 대한 반권위주의적 관점, 개인적이고 양도할 수 없는 책임에 대한 새로운 윤리를 창조해 냈습니다.
또한, 인간 개개인에게 자신의 운명을 결정할 수 있는 주권적 성격을 부여하고, 그 누구든 간에 중개자에게 의존하거나 개인적·집단적 자유와 주도권을 포기하는 행위를 거부하는 문화를 깊이 있게 다루었습니다.
모든 결정권을 그들의 손에 맡기는 것을 거부한 것입니다.
이러한 직접 행동의 긍정, 더 정확히 말하자면 우리의 해방과 운명을 다른 대리인에게 맡기지 않겠다는 거부는 핵심적인 사실입니다.
이는 인간을 국가와 자본에 종속시킬 것을 요구하는 다양한 사회주의 학파들이 노동자당, 사회주의 공화국, 사회주의 인텔리겐치아(지식 노동에 종사하는 사회계급), 최고 소비에트, 노동자 농민 정부 등 여러 형태로 전락해 가는 길목이기도 합니다.
아나키스트 노동자 문화에 대한 큰 헌신을 통해 아나키즘이 창조해 낸 이러한 통합적 관점은 개인의 행동과 집단적 행동에 동등한 가치를 부여했습니다.
덕분에 자유지상주의 노동운동은 혁명적 윤리에 바탕을 둔 문화를 발전시킬 수 있었고, 이는 책임감, 희생정신, 용기, 결단력, 위험에 맞서는 능력 등 수많은 가치를 요구하며 성장했습니다.
아나키즘은 인간의 원형에 대해 언급한 적이 없지만, 항상 자유를 옹호하는 일련의 가치를 대변해 왔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아나키즘은 항상 기성 체제에 대한 반란을 촉구해 왔습니다.
자유에 대한 이러한 고취 속에서 아나키즘은 항상 반란과 권위에 대한 불복종을 이야기했습니다.
아나키즘에 있어 권위주의적 질서에 대한 이러한 부정은 첫걸음입니다.
그것은 동시에 자신의 의지에 대한 긍정이자, 자신의 행동에 대한 심판자가 될 정당한 권리를 인정받는 개인적 의식의 옹호이기도 합니다.
이 경우, 아나키즘은 정치적, 사회적 영역뿐만 아니라 문화적 영역에서도 세상을 변화시키는 가치를 지닌 저항하는 개인을 옹호합니다.
그렇기에 아나키즘은 단순히 물질적 영역에서의 노예 상태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삶의 진정한 발전을 가로막는 종교 및 기타 이데올로기에 대한 철학적 비판을 수행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아나키즘은 항상 세계의 일부로서 존중받아야 할 세계 내재적인 법칙의 존재를 이야기해 왔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 행동을 도덕적으로 심판하며 세계를 초월하는 법칙이 존재한다는 것은 부정해 왔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아나키즘은 개인의 자율성과 개인의 사회적 의식에 기대를 겁니다.
대다수 개인에게 의사 결정에 대한 직접적인 참여를 포기할 것을 요구하는 자본주의 세계에 맞서, 아나키즘은 집단적 측면에서 인간을 고취하는 모든 가치에 의미를 부여합니다.
포기, 위임, 무능력, 인간의 미성숙함, 의회 대의제에 대한 맹신을 부추기는 사회에 맞서, 아나키즘은 집회와 밀접하게 관련된 인간의 능력과 가치를 옹호합니다.
의회주의가 대변하는 정치적 구경거리와 침묵의 사회에 맞서, 아나키즘은 집회를 옹호하며, 그와 더불어 이해력, 유창함, 논증 능력, 경청 능력, 그리고 합의에 도달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옹호합니다. 요컨대, 온전한 인간을 옹호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아나키즘은 또한 강인함, 용감함, 대담함, 담력, 결단력, 끈기, 관대함, 의무감, 희생정신, 그리고 때로는 집단을 위한 개인성의 절제와 영웅주의까지도 포용합니다.
아나키즘은 또한 희망이자, 굴복하지 않고 길들여지지 않으며 목표 달성을 위해 노력하는 의지이며, 무엇보다 개인 자신의 힘에 대한 긍정입니다.
이는 분석하고 인내하며 끈기 있게 나아가는 능력뿐만 아니라, 추론하고 관찰하며 분석하여 미래를 대비하는 능력을 의미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인내는 자기 통제, 굳건함, 끈기의 한 형태이며, 무엇보다 우리 행동이 가져올 궁극적인 결과에 대해 자각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마찬가지로 노동운동과 아나키즘이 만들어낸 혁명적 윤리는 상식, 헌신, 해결책이 빠르게 요구되는 상황에서 기민하고 효과적인 대응을 요구했습니다.
혁명적 윤리는 또한 집단 행동과 연대의 토대로서 물질적 풍요를 포기하고, 어려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노력하며, 무엇보다도 자기부정을 실천할 필요성을 확립했습니다.
이러한 모든 가치는 아나키즘의 새로운 윤리와 문화, 그리고 이 새로운 인간을 완성하는 과정에 존재해야 할 뿐만 아니라, 오늘날 벌어지고 있고 내일 벌어질 투쟁 속에서도 존재해야 합니다.
자유를 옹호하기 위한 투쟁은 많은 희생을 요구할 것입니다.
노동계급이 자신의 가치가 자본주의 세계와 양립할 수 없다는 심리적 상태를 형성할 정도로 의식 수준이 높아지는 순간, 그들의 사회적 의식은 권위주의적 문화뿐만 아니라 그들 내면에서 자라나는 세계를 현실화하지 못하게 막는 사회의 제도 자체와 충돌하게 될 것입니다.
바로 그 순간, 노동계급은 그 세계의 발전을 가로막는 세력들과 직접적인 투쟁를 벌여야 하며, 이를 옹호하는 모든 제도와 맞서 싸워야 할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희생의 정도는 자본주의와 권위주의 질서의 수호자들이 이 새로운 세계에 맞서 얼마나 강력하게 저항하느냐와 직접적으로 관련될 것입니다.
이 투쟁를 위해 이러한 가치들이 요구될 뿐만 아니라, 미래 세대에게도 이러한 가치가 요구될 것입니다. 단순히 자유를 누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유의 적들이 권위주의적 질서를 구축하려는 모든 시도를 저지하고 무엇보다 이를 방어하기 위해서입니다.
이 투쟁이 언젠가 끝날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착각하는 것입니다. 투쟁가 끝난 뒤에도 또 다른 투쟁이 존재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단순히 개인들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사상과 제도와 싸우기 때문입니다. 이와 관련된 국제주의 노동운동의 위대한 구호를 기억합시다.
"인간에게 평화를, 제도에는 전쟁을!"
원본 : https://revistaorto.net/blog/2023/07/05/valores-para-una-proxima-revolucion-social/